
우리가 먹고 자고 머무는 모든 일상이 사실 우리 전통 과학이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틀, 한국 과학 이야기
우리 조상들에게 과학은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이나 실험실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엄격한 질서였고,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지켜내는 생존 기술이었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삶 속에는 사실 수천 년간 축적된 전통 과학의 유산이 층층이 쌓여 있다. 먹고 자고 머무는 모든 일상이 우리 과학의 결과물인 셈이다.이 책은 과학을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꾸려온 방식, 즉 ‘문화적 실천’이라 말한다. 우주의 질서를 삶의 기준으로 삼았고(천문), 우리가 사는 터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했고(지리),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했다(의학). 이는 단순히 과거의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과학 교과서 속 원리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우리 과학의 문화와 역사를 읽어가다 보면, 창밖의 날씨나 발밑의 땅,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을 관찰한 인간
전통 시대에 하늘은 단순히 별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였기에, 별자리의 움직임과 일식, 월식 같은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왕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늘의 변화를 읽는 것은 곧 백성의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또한 농경 사회에서 정확한 달력(역서)은 생존 그 자체였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추수를 해야 할지 알려주는 과학적 데이터가 곧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하늘이 보여주는 온갖 변화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며, 이를 먹고사는 실용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부 하늘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에서는 왕이 왜 그토록 천문 관측에 총력을 기울였는지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치 철학을 들여다본다.
지도로 풀어낸 세계에 대한 상상력
오늘날 우리는 GPS와 스마트폰 지도로 길을 찾지만, 옛사람들에게 지도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의미를 지녔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지도를 그려 나라의 기틀을 잡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안팎으로 과시했다. 지도는 땅의 모양을 그린 그림을 넘어, 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기록이었다.지도의 선 하나, 산맥의 줄기 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한국 지리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2부 지도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에서는 땅을 딛고 살았던 조상들의 치열한 고민과 지적 유산을 통해 지도가 품고 있는 진짜 역사를 읽어본다.
역병이 남긴 흔적을 통해 이해하는 생명
옛사람들에게 질병은 가족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약재(향약)를 연구해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것은 역병의 공포를 이겨내고 공동체를 살리려 한 간절한 사투였다.이러한 독창적인 의약 전통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몸을 돌보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부 몸과 병을 보는 옛사람들’에서는 역병의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적인 건강 관리의 뿌리를 생생하게 살펴본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대한민국을 만든 근현대 엔지니어 30인
기술-산업-사회 혁신을 이끈 주역들의 삶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한국 근현대의 자화상
지금의 한국은 'Engineering Kore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강국, 공대 중심으로 재편된 대학, 일상화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기술을 통해 구축되고 작동하는 엔지니어링 세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엔지니어들의 존재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고, 그 이름 또한 베일에 싸여있다. 이 책은 엔지니어 개개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자 동시에 역사를 내밀하게 이끈 인물들의 장대한 서사시다. 개별 인물의 인생과 학문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시대상을 파노라마처럼 엿볼 수 있다. 엔지니어는 시대의 영향을 받고 한편으로 시대를 특정하게 직조해 나간 중요한 역사적 행위자다. 그러므로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는 공학기술자의 전기이자 다른 시선으로 본 역사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1권 자연과학 편에 이은 공학기술 편이다. 자연과학 편이 과학자의 생애와 학문을 함께 들여다본 책이었다면, 공학기술 편은 사회와 전면적으로 마주한 엔지니어의 다채로운 삶을 조명한다. 이들의 삶은 정치, 산업, 국제동향,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역동적이고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전환점을 마련한 강대원, 첨단 반도체를 국내 산업으로 정착시킨 강기동, 삼성의 기술개발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도약을 이끈 강진구. 이른바 ‘한국 반도체 3강의 거인들’을 비롯해 전자·통신·화학·건축·항공·방산 등 한국 사회의 토대가 된 공학기술 분야에서 활동한 30인의 엔지니어가 이 책에 담겼다.
식민지, 전쟁, 산업화, 세계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흐름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제한된 자원과 조건 속에서도 기술혁신을 이루며 선진 사회를 향한 기반을 구축해 왔다.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는 화려한 첨단기술에 가려진, 산업화 뒤에 감춰진 엔지니어의 거대한 여정을 드러내고, 나아가 공학기술 중심의 엔지니어링 코리아로 자리 잡은 현대 한국의 자화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추천★★★
우리는 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면서
세상을 고치고 유지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가?
기술 지상주의와 실리콘밸리 사고방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지탱하는 진짜 동력을 이야기하는 《지탱하는 힘: 혁신이라는 망상을 넘어서기》
세상을 구하는 건 이름 없는 유지보수자들
폭탄이 떨어진 도시 위로 연기가 자욱하고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폭격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고, 음식을 구하고, 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이 필요하다. 택시 운전사, 포장 배달원, 텔레비전 수리공은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을 받아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나선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이들은 수많은 유지보수자들임을 역설적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텔레비전을 수리해 사람들과 정보를 연결하는 수리공,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배달원, 폐허가 된 건물 사이를 누비며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택시 운전사. 이러한 필수적이고도 평범한 노동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불안을 먹고 자라는 혁신
새로운 앱, 획기적인 디바이스, 혁신적인 기술적 돌파구를 향한 집착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왜 세상을 바꾸려는 발명가와 억만장자에게 이끌리는가? 1970년대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와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낡아버린 ‘진보’를 파괴적인 ‘혁신’이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자 혁신은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이용해 기업 이윤과 성장의 도구로 전락했다. 이 책은 과대 광고된 혁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와 창의성을 가지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실질적인 혁신을 구분한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 속 혁신가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유지보수자를 대비시킨다. 우리는 왜 세상을 고치고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할까.
지연된 유지보수, 보이지 않는 위기
유지보수에는 혁신 같은 흥분과 열기가 없다. 패인 도로도 노후한 하수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그 존재를 느끼게 된다. 잘 관리되는 도로와 깨끗한 물은 혁신보다 뒤쳐지는 가치인 것일까. 인프라가 악화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유지보수를 유예하고 예산은 삭감된다. 그러는 사이에 ‘느린 재난’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노후된 인프라는 공중보건과 안전을 위협하고 결국 사람들의 생존권은 방치된다. 기술은 ‘테크’뿐은 아니지만, ‘혁신’만도 아니다. 실제 기술 문명의 90퍼센트 이상은 수리하고, 보존하고, 관리하는 영역에 속한다.
질문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물건이 고장 나면 버리는 일회용 문화 속에서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이들을 ‘아래’에 있는 존재로 치부해 왔다. 육체노동과 기술직의 가치를 폄하하지만, 정작 사회가 마비되었을 때 우리를 구하는 것은 숙련된 유지보수자들이다. 유지보수는 곧 소모적인 비용과 같이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제 유지보수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의미가 되어야 한다. 낡은 기계를 돌보는 행위는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탱시키는 힘이다. 물건과 인프라, 그리고 서로를 돌보는 행위를 통해 우리 문명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을 파괴하고 새로 만들 것인가라는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지탱하는 힘: 혁신이라는 망상을 넘어서기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숫자와 사실로 설명 가능한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져 왔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해결책 또한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이 적지 않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논의할 때조차 기후를 지키기 위해 경제를 희생할 수 없다는 우려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MAGA 연합, 유럽의 극우 그리고 한국 정치권의 기후를 후퇴시키는 움직임까지. 극우 정치 세력은 현 체제의 모순이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정책을 반대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는 이러한 기후 정치의 배후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뿌리를 추적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박지형은 기후 부정이 어떤 세계관과 역사적 사유의 전통, 그리고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추적하며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술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개발 논리를 비판한다. ‘나쁜 생각’이 과학과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태도가 개인과 집단의 심리나 자본주의적 성장 신화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라가며, ‘나’만을 중심에 둔 존재론적 제국주의를 넘어 공존과 책임의 생태 윤리로 나아갈 필요성을 제안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

기후위기, 대멸종, 인류세, 재난의 일상화. 오늘날 ‘종말’은 더 이상 종교적 예언이나 허구적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핵전쟁 이후의 절멸, 기후과학이 경고하는 티핑 포인트,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 좀비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영화까지 종말은 이제 뉴스에서 보도되고, 정책의 전제가 되며, 개인의 삶과 선택을 둘러싼 조건이 되었다.
브라질의 철학자 데보라 다노프스키와 인류학자 에두아루드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공저 『세상의 종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종말을 상상해왔으며, 그 상상은 어떤 세계관과 정치, 어떤 인간상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서구 근대의 상상력은 인간 없는 세상을 수없이 그려왔지만, 세상 없는 인간을 사유하는 데에는 극도로 취약했다. 폐허가 된 지구,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자연의 시간은 상상할 수 있지만, 인간이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동일시해온 인본주의적 사고 속에서, 인간의 종말은 곧 세상의 종말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철학과 인류학, 기후과학, SF와 대중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텍스트를 가로지르며서구 근대의 종말 담론이 공통적으로 인간을 세상의 중심이자 기준으로 설정해왔음을 드러낸다. 『세상의 종말』은 이를 해체한다.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세상, 식민주의와 개발로 이미 끝나버린 세상, 그리고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거나 새롭게 형성되는 세상까지. 이 책은 종말을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상이 끝나고 시작되는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세상의 종말: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인류세까지 종말론에 대한 단상

법학자 김기창이 새로 옮긴 『금서의 귀환, 논어』는 '시대에 분노하고 세상에 저항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분노와 저항의 사상가로 공자를 복권하는 대담한 시도다. 우리가 안다는 '공자'란 누구인가. 예의범절과 글월 공부, 어진 품성이나 논하며 수천년간 동양의 정신세계를 복고주의로 퇴행시킨 '공자왈, 맹자왈'의 슈퍼 꼰대인가? 서당이 사라진 21세기 한국에서도 웬만한 이들이라면 교양이랄 것도 없이 면학의 주문처럼 암송하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가 그의 사상인가?
이 책은 논어 첫 구절부터 기존 해석을 탄핵한다. 공자의 '학(學)'을 체계적으로 왜곡시킨 세력이 '배움'을 지식계급의 전유물로 찬탈해갔다는 것이다. 공자의 배움이란 문헌에 대한 암기나 해석이 아니다. '습(習)'은 경전을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인(仁)에 대한 왜곡도 그렇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논어에서 거듭 강조한 '仁'에 대한 규정은 맹렬한 분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 목숨을 바쳐 이뤄야 할 '윤리적 결기'에 가깝다. 이런 강렬한 핵심은 빼놓고 고작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으로 仁을 봉인한 해석 전통은 공자의 폭탄 같은 사상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았다.
새롭게 옮긴 논어와 해설을 읽고 나면 왜 초기의 유가 사상가들이 ‘분서갱유’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탄압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공자 사상 원래의 논어, 그 불온한 금서가 귀환하는 것이다.
금서의 귀환, 논어: 시대에 분노하고 세상에 저항하다

과학은 서양의 전유물인가?
근대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학에 균열을 내기
과학기술학(STS)은 객관적인 진리라고 여겨진 과학이라는 활동의 블랙박스를 열고 그 권위를 해체해왔다. 과학을 절대적 진리로 보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과학의 성스러운 외피를 걷어내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과학은 더 이상 ‘진리의 보고’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사회적 산물로 읽히기 시작했다.하지만 과학이 서구 근대 문명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해체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는 20세기 중후반의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 대부분 서구권 출신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은 서양 근대 문명의 전유물이고, 세계의 나머지는 서양의 과학을 수입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했다. 과학을 수입한 식민지는 과학의 전통이 없는, 텅 비고 매끈한 공간으로 상상되곤 했다.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postcolonial STS)은 이러한 인식의 틀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은 과학을 서구 근대의 전유물로 이해해온 오랜 인식의 틀을 비판적으로 흔들며,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권력의 지형을 다시 그린다. 워릭 앤더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과학이 서구에서 만들어져 단순히 ‘전파된’ 것이 아니라, 제국과 식민지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 지식의 체계였음을 드러낸다. 과학의 보편성은 제국이 자신을 문명으로, 타자를 미개로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였다.
서양과학은 없다

김홍중의 『가까스로-있음: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봄비조차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을 ‘가까스로-있음’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낸다.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되었고 제6의 대멸종이 임박한 지금, 그는 브뤼노 라투르의 사유를 통해 생태 파국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라투르의 존재론은 파국주의적 감수성으로 넘실거린다. 그에게 존재란 안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위협받고 겨우 이어지고 간신히 유지되는 무언가다. 연어, 나무, 인간, 벌레, 박테리아와 같은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얽힌 채 가까스로 살아 나가고 있으며, 이 불안정성 속에서만 실존한다. 김홍중은 라투르의 신학 사상,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가이아 이론, 생태 계급 이론을 차례로 세밀하게 분석하며, 우리가 지금 왜 라투르를 읽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는 라투르를 ‘21세기 사회이론의 필수 통과 지점’이라 말한다. 우리 시대의 파국을 횡단하기 위해 우리는 라투르의 통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이야기하고, 결국 다른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라투르가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에 함께 서야 한다.
가까스로-있음: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

『사람이 벌레라니: 예쁜꼬마선충으로 보는 생명』은 1mm 크기의 작은 벌레이자 ‘사람’인 예쁜꼬마선충이 어떻게 인류 과학을 진보시켰는지를 다루는 과학 교양서다. 예쁜꼬마선충은 인간과 유전자의 절반가량을 공유하며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효시가 되었고, 세포 사멸, RNA 간섭 현상, 형광 단백질로 네 차례나 노벨상 연구의 주인공이 되어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한국 선충 연구의 개척자인 생물학자 이준호가 30년간 일군 예쁜꼬마선충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복잡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가 1mm 벌레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게 이익을 입증하기 전에도 호기심과 끈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벌레라니: 예쁜꼬마선충으로 보는 생명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가 날씨의 언어로 문학과 삶을 읽어 준다. 문학에 등장하는 날씨를 통해 그 문학을 다시 읽으면 어떨까. 날씨는 삶을 닮았고 문학을 잉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학엔 삶이 담기기 마련이므로, 삶을 닮은 날씨에서 문학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와 문학은 삶이라는 고리로 연결된다. 저자의 삶이 살며시 포개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우리는 날씨와 문학을 듣고, 삶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날씨의 문장들

우리의 DNA에는 무엇까지 담겨 있을까? 우리의 입술, 발가락, 혹은 급한 성격까지 담겨 있을까? 심지어 우리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관심은 DNA가 발견되기 전부터 있었고 인류를 개조하거나, 나쁜 인종을 거르는 논리에 이용된 우생학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유전상담의 초기는 이런 역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제, 생명윤리에 입각에서 환자중심주의, 공감적 소통에 중점을 둔 현대 유전상담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유전상담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유전상담(genetic counseling) 분야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 분야가 발달한 미국의 사례를 최초의 개척자들과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카이브 연구를 병행해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우리나라에는 손으로 꼽을 만한 숫자의 전문과정이 최근에야 대학에 설립되었고 유전상담사가 100명이 안될 정도이지만 미국에는 28개 대학에 과정이 설치되었고 7000 명의 유전상담사가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북미 지역 대학 과정을 이끈 다채로운 인물들의 개인적, 정치적 동기를 탐색했다. 그 결과 유전상담이 20세기 초반의 우생학 운동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고 오늘날의 유전상담사들도 그 영향을 받은 조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책은 이런 경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전상담사가 연구 중심 의료 기관, 유전자 검사 회사, 보건부, 소규모의 전문 클리닉등 광범위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고, 분야도 소아과, 산부인과, 종양학 등에서 심장학, 약물유전학, 희귀 질환 클리닉, 헬스케어 컨설팅 및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대치동의 학습 상담에까지 동원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분야의 성장과 확장이 우생학의 어두운 혐의에서 벗어나 생명윤리와 환자 중심주의, 공감적 소통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한 사례를 따라 좋은 방향을 잡기를 바라며 이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경우 뿐 아니라, 책임 역자의 보론으로 한국의 유전상담의 역사도 일별해 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DNA에 어떤 운명이 새겨져 있지만 운명을 실현하는 것은 인간이다.
유전상담의 역사: DNA로 계산하는 인간의 운명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데 급급한 금융자본과 기업, 심화하는 빈부격차, 기후 변화를 비롯한 새로운 위기 등, 도저히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와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미션’ 중심 접근법을 제시한다. 정부가 기업,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사회 구조를 만들겠다는 ‘미션’을 중심으로 담대한 목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추진할 때,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미션 이코노미: 정부와 시장의 담대한 혁신

작품과 작가의 도덕성을 둘러싼 문제는 이 시점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다. 사건이 생길 때면 논쟁은 뜨겁게 타올라, 때로는 건강한 토론이 아닌 근거 없는 비난과 논리 없는 말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를 다루는 이론적, 분석적 틀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의 도덕성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논의를 아우르고, 활용할 만한 기초적인 이론과 분석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다.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한국사회의 집합 심리를 예각적으로 탐구해 온 사회학자 김홍중이 지난 20세기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근본이념이 ‘생존주의(survivalism)’임을 밝힌다.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관이자, 윤리이자, 미학인 생존주의는 전쟁,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는 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 책이 제기하는 심층적인 성찰과 분석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낸 시간을 이해하는 동시에, 지금 현재 한국사회가 좇고 있는 가치와 욕망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톺아보도록 안내할 것이다.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

부산대학교에서 ‘인물로 보는 기술의 역사’를 가르치는 과학기술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한국인이 주도한 발명과 혁신 사례를 모았다. 익숙한 이름인 최무선과 장영실부터, 혁신의 불모지에서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을 완성했지만 잘 알려지지는 않았던 개인과 기업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온갖 경제적‧정치적 어려움에도 산업의 기틀이 되는 과학기술을 갈고 닦아, 마침내 우리나라를 선진국의 반열에 올린 과학자와 기술자들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사는 서양의 과학을 받아들여 따라가기만 한 역사라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과학사학자 송성수 교수가 발굴한 사람과 기업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우리나라의 철강이 각종 산업을 떠받치고, 한국산 자동차와 반도체, 휴대전화를 전 세계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재는 우연이 아니다. 우리의 기술이 우주를 향하는 미래도 우연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할 일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이름을 기억하는 데 있다.
한국인의 발명과 혁신

흔히 과학은 객관적이고 단일하며 보편적이라 여겨진다. 과학기술학(STS)은 이에 도전한다. 과학기술학자들은 ‘진리’는 왜 진리라 여겨지는지, ‘법칙’은 어떻게 법칙이 되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그 맥락을 들여다본다.
STS는 세상을 작동시키는 거대한 법칙이 있다고 믿는 대신 작은 것들에 주목하고, 단일한 진리를 좇는 대신 세상의 복잡성을 인정한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은 과학기술학의 선구자들이 직접 들려주는 역사책이며, 이 분야 최고의 입문서이다. 인류세 시대를 사는 법을 고민하는 모두에게 이 책을 권한다.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우리 시대의 가장 활동적인 환경 전문 기자 남종영과 인류세연구센터를 10년간 이끌며 학문적 논의를 주도한 박범순 교수가 인류세의 풍경을 직조했다. 이 책은 인류세의 개념 정의로 시작해, 우리 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류세적 사례들을 자세히 살피고, 다가올 인류세에 대한 상상으로 나아간다. 저마다의 파국과 희망으로 뒤엉킨 글들은 지금, 이 순간 인류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진솔하게 묘사한다. 보라고. 이게 바로 인류세의 풍경이라고.
인류세 풍경

유연 근무제는 과로와 번아웃을 해결하고 있는가? 재택근무가 우리의 워라밸이 나아지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가? 코로나19를 거치며 얼떨결에 새로운 노동 방식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우리는, 유연 근무가 생각만큼 유연하지 않음을 몸소 느꼈다. 그렇기에 바로 지금이, 지속 가능한 새로운 노동 방식을 모색해야 할 때다. 우리가 지금 일하는 방식의 문제와 그 원인을 드러내고, 효과적이고 건강한 새로운 방식을 모색하고 입증해 제안하는 『정상 과로(원제: Overload)』가 출간되었다.
정상 과로: 유연하지 않은 유연근무에서 벗어나기

13년간 연재한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중 365개의 글을 가르고 고른 책이다. 제목처럼 자연과 문화에 대한 다양한 성찰도 있지만, 누누이 관심을 쏟은 교육, 정치, 독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그날의 날씨, 기념일, 추억, 대화, 노래, 시 등 기존 책에서는 보기 힘든 최재천 개인의 삶도 담뿍 묻어 있다.
저자의 13년을 누군가의 1년치 일기처럼 보여 주고 싶었다. 그날의 기념일을 한켠에 적었다. 한 글이 한 면에 들어가도록 구성했다. 그래서 이 책은 차례가 없다. 날짜가 곧 차례이다. 비타민 같은 저자의 글을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복용하도록 꾸렸다. 매일 한 장씩만 넘기면 충분한 일력처럼, 365일이 지나면 자연히 건강해지게. 처음 공개되는 40여 개의 사진, 메모로 지금의 최재천을 만든 흔적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365일, 최재천의 오늘

인류세 책들의 책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인류세에 관한 방대한 논의가 정리되어 있는 참고서와 같다. 하지만 이 책의 집필 의도는 인류세 논의의 집대성이 아니라, ‘다면적 시선’에 있다. 인류세는 유독 거대하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양한 학문의 시선이 필요하고, 나아가 그 시선들은 통합되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선으로 머물다 임시로 연계되는, 헐거운 관계여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지질학, 지구시스템과학, 생물학, 경제학,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등 다양한 학문의 시선을 소개하고 논하는, 다소 어수선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책은 그 자체로 인류세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다. 인류세 논의의 집대성은 그런 노력에 자연스레 뒤따르는 결과였다. 2024년 3월 인류세 공식 인정이 무산된 이후의 최신 상황을 반영한 ‘한국어판 특별 기고문’이 포함되어 번역본만의 고유함을 더했다.
인류세 책

영화학자 이윤영과 문화연구자 이상길의 서평 모음집이다. 두 사람은 1980년대 후반에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으며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고 지금은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학문 세계에서 그 정도의 겹침은 그저 스침에 지나지 않을 수 있겠지만, 두 학자는 오랫동안 교유를 이어오며 공동번역 작업도 했다.
두 사람이 2021년 1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생각, 시대를 바꾸다’라는 주제로 『출판문화』에 매달 번갈아 가며 연재한 서평을 중심으로 23편의 글을 모았다. 연재된 시기가 코로나19 ‘대격리 시대’의 중심부를 지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적 교류가 끊긴 그 시대, 과장하자면 이제까지의 문명이 종언을 고하는 것은 아닌가 싶던 과민한 시기에 두 명의 학자는 ‘우리를 키운 책들’을 다시 마주한 것이다. 마치 바둑의 대국을 하듯, 두 사람이 한 권씩의 책을 내밀며 서로의 의중을 담은 ‘수’가 수놓은 듯 짜여진 것이 이 서평집이다.
우리를 읽은 책들

‘읽는 법을 배워 문학과 다시 만나다’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이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문학이론의 기초를 ‘텍스트’ ‘읽다’ ‘언어’ ‘욕망’ ‘세계’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소개하고, 2부에서 오리엔탈리즘과 포스트콜로니얼, 포스트휴머니즘, 환경, 정신분석, 젠더와 문학의 관계 등 최신 문학/이론의 구체적 성과물을 소개한다. 이 책은 어렵다고 생각했던 이론을 통해 문학의 즐거움으로 흠뻑 적실 물줄기를 발견하는 ‘도구상자’가 될 것이다.
문학 ‘읽기’의 방법들

찰스 다윈의 성선택론을 무기로 가부장적 권위주의로 똘똘 뭉친 우리 사회의 남성 이데올로기에 강력한 폭탄을 던지고 호주제 폐지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 책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가 출간 20주년을 맞아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로 다시 돌아왔다.
20주년 기념판에는 여성학자 정희진, 인류학자 박한선, 경제학자 이철희와 함께한 특별 좌담을 수록, 이 책이 출간된 이후 우리 사회 안팎에서 일어났던 변화와 그 변화 속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 그리고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관한 심도 있는 논평을 통해 이 책의 시대성을 짚어봄과 동시에 오늘날의 담론을 새롭게 조명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가 화장을 한다

시대를 앞서 돌봄 문제와 안락사를 다룬 이 과감한 소설을 이 문제를 절감하는 이 시대에 다시 만나다. 늙음과 질병, 돌봄과 죽음이라는 지난한 과정을 온몸으로 통과하는 한 가족의 심리를 첨예하게 묘사한 이 소설은 더 나은 현재의 삶과 미래의 죽음을 위해 우리가 질병과 돌봄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영감을 줄 것이다.
돌봄살인

사회적 가치나 윤리에 초연한, 오롯이 그 자신만의 객관적 ‘과학’이 존재할 수 있을까. 과학이 초래한 문제에 대해 정작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상태, 우리 시대의 ‘과학’은 이런 사태에 봉착해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가치’의 문제를 역사적, 철학적으로 되짚어보면서 우리 시대에 필요한 과학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저자들은 과학이 한 사회와 그 사람들이 지닌 숱한 가치와 얽힌 관계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테크노사이언스(브뤼노 라투르)에서 코스모테크닉스(허욱)로 이어지는 새로운 과학‧기술 이해의 궤적을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되어 준다.
과학과 가치: 테크노사이언스에서 코스모테크닉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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