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이 일상화된 오늘날, 우리는 흔히 인공지능의 대형언어모델이 범하는 일시적인 환각이나 오답을 교정하는 수준에서 팩트체크를 이야기하곤 한다. 그러나 현재의 인공지능은 잠시 착각에 빠진 친구라기보다는, 수백 개의 채널에서 출처와 화자를 알 수 없는 그럴듯한 말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고장 난 라디오’에 가깝다. 나아가 미래의 위협은 단순한 거짓 정보 유포를 넘어, 인간의 감정을 흔들고 스스로 진화하며 여론을 조작하는 ‘AI 군집(AI 스웜)’의 형태로 정교해지고 있다. 악의적인 거짓 정보뿐만 아니라, 생산성을 높여 인정받고자 하는 평범한 이들의 욕망까지 더해지면서, 오늘날 정보 생태계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진 팩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문제는 팩트를 검증하고 확정하고 전달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도 이제 다들 고장 난 라디오를 여러 대씩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짜 논문을 대량 생산하는 ‘논문 공장’의 습격에 직면한 학계부터 언론, 사법, 역사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엄밀한 수준의 팩트체크 훈련을 받은 전문가들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양의 정보가 팩트의 지위를 노리며 쏟아지고 있다. 팩트체커들은 이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특집 섹션에서는 인공지능 시대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겪는 피로감과 과부하 속에서 팩트의 본질을 묻는 일곱 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심층적인 진단을 내놓는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생성되는 팩트란 없으며 사실은 오직 엄격한 제도와 인간의 실천적 관계 안에서만 확립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팩트는 기자가 의심하고 확인할 때에만, 과학자 동료가 검증하고 재현할 때에만, 역사가가 선택하고 엮어낼 때에만, 판사가 맥락을 따지고 판단할 때에만 비로소 팩트가 된다. 즉 모든 팩트는 관계와 제도를 통해 구성되고 확립된다. 인공지능시대를 맞이하여 우리가 모두 팩트체커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결국 팩트를 확립하는 데 필요한 관계와 제도를 더 단단하게 정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한때 어리숙했던 초보자가 팩트를 체크하고 판단하고 확정하는 일을 배우고 반복하면서 비로소 기자가 되고, 과학자가 되고, 역사가가 되고, 판사가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울러 이번 호에서는 기술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시대의 사회적 책무를 돌아보는 에세이도 함께 수록되었다. 2024년 문을 닫은 ‘서울대 팩트체크센터’의 기록은 우리 사회가 팩트를 지키기 위해 펼쳐온 고단한 제도적 분투를 실증하며, “인공지능은 법관의 양심을 생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기계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전문가만의 고유한 도덕적 책무를 환기한다. 이처럼 소음 속에서 사실을 가려내는 전문성과 이를 세상에 선언하는 용기, 그리고 새로운 증거 앞에 기존의 사실도 뒤집힐 수 있음을 인정하는 ‘반증 가능성’의 겸허함이야말로 인간 팩트체커들의 미덕이다. 모든 시민이 전업 팩트체커로 살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 고장 난 라디오의 소음을 뚫고 진실의 전선을 지켜내는 진짜 이야기와 구체적인 해법이 궁금하다면 지금 《에피》 36호를 펼쳐야 한다.
들어가며 Prologue
팩트체커를 위하여 | 전치형
팩트체커: 과학잡지 에피 Epi 36호

우리가 먹고 자고 머무는 모든 일상이 사실 우리 전통 과학이었다
세상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틀, 한국 과학 이야기
우리 조상들에게 과학은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는 공식이나 실험실의 데이터가 아니었다. 그것은 때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엄격한 질서였고,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의 생명을 지켜내는 생존 기술이었다.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삶 속에는 사실 수천 년간 축적된 전통 과학의 유산이 층층이 쌓여 있다. 먹고 자고 머무는 모든 일상이 우리 과학의 결과물인 셈이다.이 책은 과학을 기술의 발전으로만 보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이 세계를 이해하고 꾸려온 방식, 즉 ‘문화적 실천’이라 말한다. 우주의 질서를 삶의 기준으로 삼았고(천문), 우리가 사는 터전을 체계적으로 파악하려 했고(지리), 생명을 보호하고 공동체를 유지하고자 했다(의학). 이는 단순히 과거의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배우는 과학 교과서 속 원리들과도 깊이 맞닿아 있다. 하늘, 땅, 사람이라는 키워드를 따라 우리 과학의 문화와 역사를 읽어가다 보면, 창밖의 날씨나 발밑의 땅, 그리고 우리 자신의 몸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일 것이다.
별들로 가득 찬 하늘을 관찰한 인간
전통 시대에 하늘은 단순히 별을 구경하는 곳이 아니었다.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나라를 다스리는 존재였기에, 별자리의 움직임과 일식, 월식 같은 천문 현상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왕의 권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하늘의 변화를 읽는 것은 곧 백성의 마음을 읽는 일이었다.또한 농경 사회에서 정확한 달력(역서)은 생존 그 자체였다.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추수를 해야 할지 알려주는 과학적 데이터가 곧 백성들의 배를 불리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조상들은 하늘이 보여주는 온갖 변화를 인간 중심으로 해석하며, 이를 먹고사는 실용적인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1부 하늘을 보면 세상이 보인다’에서는 왕이 왜 그토록 천문 관측에 총력을 기울였는지 그 속에 담긴 깊은 통치 철학을 들여다본다.
지도로 풀어낸 세계에 대한 상상력
오늘날 우리는 GPS와 스마트폰 지도로 길을 찾지만, 옛사람들에게 지도는 그보다 훨씬 입체적인 의미를 지녔다.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 가장 먼저 지도를 그려 나라의 기틀을 잡았고, 이를 통해 국가의 위상을 안팎으로 과시했다. 지도는 땅의 모양을 그린 그림을 넘어, 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기록이었다.지도의 선 하나, 산맥의 줄기 하나에는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다. 한국 지리학의 정점이라 불리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이르기까지, ‘2부 지도를 보면 역사가 보인다’에서는 땅을 딛고 살았던 조상들의 치열한 고민과 지적 유산을 통해 지도가 품고 있는 진짜 역사를 읽어본다.
역병이 남긴 흔적을 통해 이해하는 생명
옛사람들에게 질병은 가족과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가장 큰 위협이었다. 하지만 우리 조상들은 두려움에 머물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 땅에서 나고 자란 약재(향약)를 연구해 우리 몸에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그것은 역병의 공포를 이겨내고 공동체를 살리려 한 간절한 사투였다.이러한 독창적인 의약 전통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기술을 넘어, 사람의 몸을 돌보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3부 몸과 병을 보는 옛사람들’에서는 역병의 위기 속에서도 빛을 발했던 조상들의 지혜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한국적인 건강 관리의 뿌리를 생생하게 살펴본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과학

대한민국을 만든 근현대 엔지니어 30인
기술-산업-사회 혁신을 이끈 주역들의 삶을 통해
입체적으로 드러나는 한국 근현대의 자화상
지금의 한국은 'Engineering Kore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조업 강국, 공대 중심으로 재편된 대학, 일상화된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한국 사회는 기술을 통해 구축되고 작동하는 엔지니어링 세계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온 엔지니어들의 존재는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고, 그 이름 또한 베일에 싸여있다. 이 책은 엔지니어 개개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이자 동시에 역사를 내밀하게 이끈 인물들의 장대한 서사시다. 개별 인물의 인생과 학문을 낱낱이 들여다보며 그 시대상을 파노라마처럼 엿볼 수 있다. 엔지니어는 시대의 영향을 받고 한편으로 시대를 특정하게 직조해 나간 중요한 역사적 행위자다. 그러므로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는 공학기술자의 전기이자 다른 시선으로 본 역사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한국 과학기술 인물열전’ 시리즈의 두 번째 책으로, 1권 자연과학 편에 이은 공학기술 편이다. 자연과학 편이 과학자의 생애와 학문을 함께 들여다본 책이었다면, 공학기술 편은 사회와 전면적으로 마주한 엔지니어의 다채로운 삶을 조명한다. 이들의 삶은 정치, 산업, 국제동향, 시민사회와의 긴밀한 상호작용 속에서 더욱 역동적이고 다층적으로 전개된다. 세계 반도체 산업의 전환점을 마련한 강대원, 첨단 반도체를 국내 산업으로 정착시킨 강기동, 삼성의 기술개발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도약을 이끈 강진구. 이른바 ‘한국 반도체 3강의 거인들’을 비롯해 전자·통신·화학·건축·항공·방산 등 한국 사회의 토대가 된 공학기술 분야에서 활동한 30인의 엔지니어가 이 책에 담겼다.
식민지, 전쟁, 산업화, 세계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흐름 속에서 엔지니어들은 제한된 자원과 조건 속에서도 기술혁신을 이루며 선진 사회를 향한 기반을 구축해 왔다.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는 화려한 첨단기술에 가려진, 산업화 뒤에 감춰진 엔지니어의 거대한 여정을 드러내고, 나아가 공학기술 중심의 엔지니어링 코리아로 자리 잡은 현대 한국의 자화상을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엔지니어 대한민국을 만들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파이낸셜타임스》 추천★★★
우리는 왜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에게 열광하면서
세상을 고치고 유지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가?
기술 지상주의와 실리콘밸리 사고방식에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위한
세상을 지탱하는 진짜 동력을 이야기하는 《지탱하는 힘: 혁신이라는 망상을 넘어서기》
세상을 구하는 건 이름 없는 유지보수자들
폭탄이 떨어진 도시 위로 연기가 자욱하고 거리는 텅 비어 있다. 폭격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고, 음식을 구하고, 뉴스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이 필요하다. 택시 운전사, 포장 배달원, 텔레비전 수리공은 사람들의 절박한 요청을 받아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나선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이들은 수많은 유지보수자들임을 역설적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텔레비전을 수리해 사람들과 정보를 연결하는 수리공,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배달원, 폐허가 된 건물 사이를 누비며 사람들의 이동을 돕는 택시 운전사. 이러한 필수적이고도 평범한 노동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정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불안을 먹고 자라는 혁신
새로운 앱, 획기적인 디바이스, 혁신적인 기술적 돌파구를 향한 집착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리고 왜 세상을 바꾸려는 발명가와 억만장자에게 이끌리는가? 1970년대 미국에서는 경기 침체와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낡아버린 ‘진보’를 파괴적인 ‘혁신’이 대체했다. 시간이 지나자 혁신은 ‘뒤처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이용해 기업 이윤과 성장의 도구로 전락했다. 이 책은 과대 광고된 혁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기회와 창의성을 가지고 점진적인 개선을 통해 이루어진 실질적인 혁신을 구분한다. 그리고 화려한 조명 속 혁신가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유지보수자를 대비시킨다. 우리는 왜 세상을 고치고 유지하는 사람들을 보지 못할까.
지연된 유지보수, 보이지 않는 위기
유지보수에는 혁신 같은 흥분과 열기가 없다. 패인 도로도 노후한 하수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멈추는 순간 비로소 그 존재를 느끼게 된다. 잘 관리되는 도로와 깨끗한 물은 혁신보다 뒤쳐지는 가치인 것일까. 인프라가 악화되는 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유지보수를 유예하고 예산은 삭감된다. 그러는 사이에 ‘느린 재난’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노후된 인프라는 공중보건과 안전을 위협하고 결국 사람들의 생존권은 방치된다. 기술은 ‘테크’뿐은 아니지만, ‘혁신’만도 아니다. 실제 기술 문명의 90퍼센트 이상은 수리하고, 보존하고, 관리하는 영역에 속한다.
질문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물건이 고장 나면 버리는 일회용 문화 속에서 유지보수를 수행하는 이들을 ‘아래’에 있는 존재로 치부해 왔다. 육체노동과 기술직의 가치를 폄하하지만, 정작 사회가 마비되었을 때 우리를 구하는 것은 숙련된 유지보수자들이다. 유지보수는 곧 소모적인 비용과 같이 받아들여져 왔지만 이제 유지보수는 미래를 위한 투자와 같은 의미가 되어야 한다. 낡은 기계를 돌보는 행위는 단순한 수리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지탱시키는 힘이다. 물건과 인프라, 그리고 서로를 돌보는 행위를 통해 우리 문명의 불완전함을 수용하고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무엇을 파괴하고 새로 만들 것인가라는 말뿐인 혁신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보존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할 때이다.
지탱하는 힘: 혁신이라는 망상을 넘어서기

2016년 이세돌·알파고 대국이 알파고의 4승 1패로 끝나고 알파고는 동시대 인공지능의 상징이 되었고, 2026년에는 챗지피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은 그 시작점에 있었던 일과 현재 벌어지는 일 사이에 모종의 역사적 연결을 상상하게 한다. 알파고의 등장이 충격이었을 수도, 예견된 미래였을 수도 있는 여러 가능성 사이에서, 인공지능은 각 분야가 가진 고유한 맥락 속에서 시도되고 평가받고 있다.
2016년 3월 알파고가 던진 미래에서 온 질문들은 2026년 3월 인공지능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리에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경험으로 다가온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인공지능이 얼마나 뛰어난지는 더 이상 가장 시급한 질문이 아니다.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면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본질과 가치는 어떻게 바뀌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정체성과 자부심은 지켜질 수 있는지가 더욱 긴급하고 흥미로운 질문이 될 것이다.
뛰어난 인공지능이 있다고 해서 과학과 과학자가, 소설과 소설가가, 음악과 음악가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 사용이 보편화된 시대의 과학자와 예술가는 그 이전과 같은 존재일 수 없다. 이들이 만드는 과학, 문학, 음악은 분명 낯설고 때로 이상할 것이다. 각 분야에서 ‘알파고 대국’과 유사한 과정을 겪으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과학과 과학자, 새로운 소설과 소설가, 새로운 음악과 음악가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이제 막 논의가 시작되었다.
들어가며 Prologue
알파고 이후 10년 | 전치형
인공지능과 함께 살기: 과학잡지 에피 Epi 35호

기후변화는 오랫동안 숫자와 사실로 설명 가능한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져 왔다. 원인을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면, 해결책 또한 과학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일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세계 곳곳에서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 세력이 적지 않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논의할 때조차 기후를 지키기 위해 경제를 희생할 수 없다는 우려가 가장 먼저 터져나왔다.
트럼프와 그를 추종하는 MAGA 연합, 유럽의 극우 그리고 한국 정치권의 기후를 후퇴시키는 움직임까지. 극우 정치 세력은 현 체제의 모순이 기후위기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후 정책을 반대하는 과격한 행동으로 정치적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는 이러한 기후 정치의 배후에 감춰진 이데올로기의 실체를 파악하고 그 뿌리를 추적하려는 데에 목적을 두고 있다. 저자 박지형은 기후 부정이 어떤 세계관과 역사적 사유의 전통, 그리고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형성되는지를 추적하며 기후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기술 중심주의와 국가주의적 개발 논리를 비판한다. ‘나쁜 생각’이 과학과 정책을 어떻게 왜곡하는지,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태도가 개인과 집단의 심리나 자본주의적 성장 신화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따라가며, ‘나’만을 중심에 둔 존재론적 제국주의를 넘어 공존과 책임의 생태 윤리로 나아갈 필요성을 제안한다.
왜 극우는 기후위기를 부정하는가

기후위기, 대멸종, 인류세, 재난의 일상화. 오늘날 ‘종말’은 더 이상 종교적 예언이나 허구적 상상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핵전쟁 이후의 절멸, 기후과학이 경고하는 티핑 포인트, 인류세를 둘러싼 논쟁, 좀비 아포칼립스와 디스토피아 영화까지 종말은 이제 뉴스에서 보도되고, 정책의 전제가 되며, 개인의 삶과 선택을 둘러싼 조건이 되었다.
브라질의 철학자 데보라 다노프스키와 인류학자 에두아루드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의 공저 『세상의 종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종말을 상상해왔으며, 그 상상은 어떤 세계관과 정치, 어떤 인간상을 전제하고 있는지를 묻는다. 서구 근대의 상상력은 인간 없는 세상을 수없이 그려왔지만, 세상 없는 인간을 사유하는 데에는 극도로 취약했다. 폐허가 된 지구, 인간이 사라진 이후에도 계속되는 자연의 시간은 상상할 수 있지만, 인간이 더 이상 세상의 주인이 아닌 존재로 살아가는 방식은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인간의 역사와 세상의 역사를 동일시해온 인본주의적 사고 속에서, 인간의 종말은 곧 세상의 종말로 이해되어 왔다.
이 책의 저자들은 철학과 인류학, 기후과학, SF와 대중문화에 이르는 다양한 텍스트를 가로지르며서구 근대의 종말 담론이 공통적으로 인간을 세상의 중심이자 기준으로 설정해왔음을 드러낸다. 『세상의 종말』은 이를 해체한다. 기후 위기로 삶의 터전을 잃은 세상, 식민주의와 개발로 이미 끝나버린 세상, 그리고 여전히 다른 방식으로 지속되거나 새롭게 형성되는 세상까지. 이 책은 종말을 단일한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상이 끝나고 시작되는 방식으로 사유하도록 이끈다.
세상의 종말: 좀비 아포칼립스에서 인류세까지 종말론에 대한 단상

법학자 김기창이 새로 옮긴 『금서의 귀환, 논어』는 '시대에 분노하고 세상에 저항하다'라는 부제를 달았다. 분노와 저항의 사상가로 공자를 복권하는 대담한 시도다. 우리가 안다는 '공자'란 누구인가. 예의범절과 글월 공부, 어진 품성이나 논하며 수천년간 동양의 정신세계를 복고주의로 퇴행시킨 '공자왈, 맹자왈'의 슈퍼 꼰대인가? 서당이 사라진 21세기 한국에서도 웬만한 이들이라면 교양이랄 것도 없이 면학의 주문처럼 암송하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가 그의 사상인가?
이 책은 논어 첫 구절부터 기존 해석을 탄핵한다. 공자의 '학(學)'을 체계적으로 왜곡시킨 세력이 '배움'을 지식계급의 전유물로 찬탈해갔다는 것이다. 공자의 배움이란 문헌에 대한 암기나 해석이 아니다. '습(習)'은 경전을 복습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인(仁)에 대한 왜곡도 그렇다.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논어에서 거듭 강조한 '仁'에 대한 규정은 맹렬한 분노,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 목숨을 바쳐 이뤄야 할 '윤리적 결기'에 가깝다. 이런 강렬한 핵심은 빼놓고 고작 '어질고 너그러운 품성'으로 仁을 봉인한 해석 전통은 공자의 폭탄 같은 사상에서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과 같았다.
새롭게 옮긴 논어와 해설을 읽고 나면 왜 초기의 유가 사상가들이 ‘분서갱유’라는 무시무시한 권력의 탄압을 받았는지 알게 된다. 공자 사상 원래의 논어, 그 불온한 금서가 귀환하는 것이다.
금서의 귀환, 논어: 시대에 분노하고 세상에 저항하다

시간을 정의하는 방식은 제각각이지만, 온도를 낮춰 분자의 운동이 느려지면 시간도 천천히 간다. 온도가 낮아지면 물은 얼어 얼음이 되고, 분자의 움직임은 극도로 통제된다. 점점 온도가 낮어져 모든 물질의 움직임이 멈추는 온도는 -273.15도, 0 켈빈이다. 인간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낮은 온도로 냉동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그 욕망은 ‘시원함과 뽀송뽀송함’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 냉동기술은 시간을 통제한다.
이번 호 에피는 바로 이러한 냉동기술에 주목한다. 냉동기술은 차가움을 구현하는 기술이면서도 동시에, 그 저온을 통해 인간이 통제하고 싶은 ‘온도 너머의 것들’을 잘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의 식탁도 통제하고 싶지만, 동시에 생명도, 시간도, 더욱 강력한 컴퓨팅 파워도 통제하고 싶어한다. 생생히 살아있는 우리의 몸이 감쪽같이 얼었다가 해동될 수 있는 미래가 온다면 우리는 지금의 사회를 살 것인가, 혹은 미래 사회를 만들어갈 인류들에게 베팅을 하며 수면에 들 것인가? 양자역학 세계의 불확실성까지도 극저온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인간의 연산 능력은 얼마나 더 진보할 것인가? 인공지능은 얼마나 더 빨리 발전할까?
살을 에는 추위에 롱패딩과 목도리로 무장한 군중들이 발걸음을 재촉하는 겨울이 왔다. 추위는 괴롭지만, 그 추위에 대한 상상을 인간이 인위적으로 더 극한까지 몰아붙여 더 많은 욕망을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따뜻하게 되살려 낸 냉동만두를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호호 불어 먹으며, 꽁꽁 얼어붙은 것들이 보여주는 인간 사회의 숨겨진 이야기, 인간이 보유한 유일한 타임머신, 냉동기술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프로즌: 과학잡지 에피 Epi 34호

과학은 서양의 전유물인가?
근대 서양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기술학에 균열을 내기
과학기술학(STS)은 객관적인 진리라고 여겨진 과학이라는 활동의 블랙박스를 열고 그 권위를 해체해왔다. 과학을 절대적 진리로 보지 않고, 사회적·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는 과학의 성스러운 외피를 걷어내는 데 일정한 성공을 거두었다. 과학은 더 이상 ‘진리의 보고’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내는 복잡한 사회적 산물로 읽히기 시작했다.하지만 과학이 서구 근대 문명의 산물이라는 인식을 해체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이는 20세기 중후반의 과학기술학 연구자들이 대부분 서구권 출신이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과학은 서양 근대 문명의 전유물이고, 세계의 나머지는 서양의 과학을 수입해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만연했다. 과학을 수입한 식민지는 과학의 전통이 없는, 텅 비고 매끈한 공간으로 상상되곤 했다.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postcolonial STS)은 이러한 인식의 틀에 균열을 내는 작업이다.
탈식민주의 과학기술학은 과학을 서구 근대의 전유물로 이해해온 오랜 인식의 틀을 비판적으로 흔들며, 지식의 생산과 유통을 둘러싼 권력의 지형을 다시 그린다. 워릭 앤더슨을 비롯한 연구자들은 과학이 서구에서 만들어져 단순히 ‘전파된’ 것이 아니라, 제국과 식민지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 지식의 체계였음을 드러낸다. 과학의 보편성은 제국이 자신을 문명으로, 타자를 미개로 규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언어였다.
서양과학은 없다

“버섯은 언제나 생각이 가득한 모자를 쓰고 있어요.
그래서 정말 많은 걸 알고 있지요.
버섯은 무엇을 알고 있을까요?”
숲을 지키는 버섯의 놀라운 힘!
친구를 돕고, 숲을 살리고, 반짝이는 세상을 만드는 버섯 이야기
땅속 깊이 얽힌 생명의 그물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이어 주는 버섯
숲에는 서로 다른 모양과 성격을 가진 다양한 버섯이 살고 있어요. 키가 크고 우산처럼 펼쳐진 버섯, 겨울잠을 자는 버섯, 빛을 내는 버섯, 신비로운 색을 품은 버섯, 냄새를 풍기는 버섯까지 모두 제 역할을 가진 버섯 친구들이지요.버섯은 몸의 대부분을 흙속에 숨기고 있어요. 그래서 보이는 것만으로는 다 알 수 없지요. 땅속 깊은 곳에는 버섯의 진짜 몸인 ‘균사’가 길게, 멀리 뻗어나가 있어요. 땅속의 물과 무기질을 흡수해 나무에게 전달하고, 낙엽을 작은 조각으로 만들고, 숲속 곳곳을 탐험하며 생명의 흔적을 느껴요.
함께 자라고, 나누고, 다시 피어나는 생명
버섯은 식물 친구들과 같은 화학물질로 서로 신호를 보내요. 물이 부족하다거나, 벌레가 공격한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영리한 버섯이라도, 어려움이 없진 않아요. 다른 생명체들과 마찬가지로, 기후 변화로 숲이 줄어들면 버섯도 살아남기 힘들어요. 하지만 나쁜 경우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버섯은 도시 건물 지붕에 꾸민 정원에서도, 집 안의 화분에서도 잘 자랍니다. 무엇보다도, 버섯은 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연결되어 있어야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버섯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어린이가 과학을 만나는 순간,
0학년 과학 시리즈의 열두 번째 책
학교에 가기 전에 숫자와 글자를 익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움직이고 작용하는 원리들을 깨치면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든 어렵지 않을 거예요. 혹시 학교에 가서도 어려움을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면, ‘0학년 과학’부터 다시 시작해 보세요. 어린이들이 일상에서 작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무언가를 깨닫는 것은 모두 ‘과학적인 순간’입니다. 과학 그림책 시리즈, ‘0학년 과학’은 어린이들이 이야기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하고, 신나게 모험하는 시간을 응원합니다. 그 속에서 더 많은 과학적 순간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버섯은 알고 있어요

두 세대를 아우르는 사랑과 허무의 초상
이음희곡선 스물한번째 작품 『도그 워커의 사랑』은 숙례와 소영의 삶을 통해 부의 거품이 만들어낸 권태와 불안, 허무의 실체를 조명한다. 낮과 밤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구조로, 낮의 이야기는 숙례의 실종 이후 약 6개월의 시간을 다룬다. 뉴욕에서 정신과 의사로 일하던 40대 여자 소영은 재벌이자 어머니인 숙례가 실종되자 한국으로 돌아온다. 어머니의 집에 머물게 된 그는 어머니의 반려견을 돌보기 위해 고용한 도그 워커 하민과 사랑을 시작한다.한편, 밤의 이야기는 1956년부터 숙례가 사라지던 날까지의 과거를 따라간다. 숙례의 집에 새로 고용된 미정은 점차 숙례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단순한 고용관계를 넘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서로에게 스며든다. 정의하기 어려운 두 인물 사이의 교감은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무대의 여운을 다시, 텍스트로 읽다
『도그 워커의 사랑』은 작가 강동훈이 DAC Artist*로 선정되어 집필한 희곡으로, 2025년 10월 29일부터 11월 16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DAC Artist 프로그램으로 초연된다.본 도서는 이음이 두산아트센터와 공동제작하여 초연의 감동을 텍스트로 가장 충실하게 복원한 희곡집이다. 독자는 소영과 에디와 하민, 미정과 숙례라는 두 세대가 교차하는 사랑 이야기를 텍스트로 읽음으로써 돈으로 연결된 세계 속에서 움트는 감정선을 세심하게 따라갈 수 있다. 또한 한 인간이 반복되는 허무와 무기력, 이유 없는 불안을 마주하고 마침내 사랑을 통해 자립하는 과정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DAC Artist: 두산아트센터가 공연 예술 분야의 40세 이하 젊은 예술가들을 발굴, 선정하여 다양한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도그 워커의 사랑

김홍중의 『가까스로-있음: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봄비조차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실존을 ‘가까스로-있음’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해낸다. 기후 위기가 일상이 되었고 제6의 대멸종이 임박한 지금, 그는 브뤼노 라투르의 사유를 통해 생태 파국을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사회적 의제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라투르의 존재론은 파국주의적 감수성으로 넘실거린다. 그에게 존재란 안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위협받고 겨우 이어지고 간신히 유지되는 무언가다. 연어, 나무, 인간, 벌레, 박테리아와 같은 모든 존재는 다른 존재들과 얽힌 채 가까스로 살아 나가고 있으며, 이 불안정성 속에서만 실존한다. 김홍중은 라투르의 신학 사상,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가이아 이론, 생태 계급 이론을 차례로 세밀하게 분석하며, 우리가 지금 왜 라투르를 읽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그는 라투르를 ‘21세기 사회이론의 필수 통과 지점’이라 말한다. 우리 시대의 파국을 횡단하기 위해 우리는 라투르의 통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세계를 다르게 보고, 다르게 이야기하고, 결국 다른 세계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라투르가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에 함께 서야 한다.
가까스로-있음: 브뤼노 라투르와 파국의 존재론

기후위기로 여름이 무더워질수록 야구장의 홈런은 늘어날까, 줄어들까? 기계심판의 등장은 야구의 진보인가, 퇴보인가? 과학잡지 에피 33호가 가을을 맞아 ‘야구’ 특집을 다룬다. 화내지 않고 야구를 즐기는 방법부터 데이터와 감각 사이에서 균형 잡는 법까지. 과학의 렌즈로 들여다 본 야구는 9회말 2아웃의 역전승처럼 반전과 발견의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야구를 화내지 않고 즐기는 방법 | 황승식
숨 EXHALATION
공놀이는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 전중환
기후볼 시대가 온다 | 남종영
오타니의 구종, 양키스의 배트: 야구가 품은 물리학 | 이종필
야구: 과학잡지 에피 Epi 33호

『사람이 벌레라니: 예쁜꼬마선충으로 보는 생명』은 1mm 크기의 작은 벌레이자 ‘사람’인 예쁜꼬마선충이 어떻게 인류 과학을 진보시켰는지를 다루는 과학 교양서다. 예쁜꼬마선충은 인간과 유전자의 절반가량을 공유하며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의 효시가 되었고, 세포 사멸, RNA 간섭 현상, 형광 단백질로 네 차례나 노벨상 연구의 주인공이 되어 과학사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한국 선충 연구의 개척자인 생물학자 이준호가 30년간 일군 예쁜꼬마선충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의 복잡한 생명 현상을 설명하는 열쇠가 1mm 벌레 안에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인간에게 이익을 입증하기 전에도 호기심과 끈기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과학이라는 사실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벌레라니: 예쁜꼬마선충으로 보는 생명

알면, 사랑한다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단연 모기도 그렇다. 모기는 인류의 역사와 꾸준히 성실히 벗하며 끊임 없이 인간에게 해를 입혀 왔다. 지금도 말라리아, 뎅기열, 웨스트나일열 등 각종 치명적인 질병을 전염시키며 해마다 72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이쯤 되면 모기는 더위와 함께 계절이 여름임을 알리는 상징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모기에 인류가 내내 속수무책이었던 것은 아니다. 모기를 없애기 위한 여러 모색을 했다. 그러다 박멸에 가깝게 모기를 없앨 약을 개발하는 데 성공은 했는데, 모기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해 다른 생명들까지 위협하게 되었다. 딜레마다. 에피 32호에서 모기를 다룬 원고들은 모두 이 딜레마 위에 서있다. 인간을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는 모기도 분명 힘든 사정이 있겠다만 그 사정까지 고려하고 싶진 않지만, 완전 비정하기에는 인간도 함께 힘들어지는 그런 딜레마.
게다가 모기가 생태계에서 나름 기여하는 역할까지 고려하면 모기를 ‘박멸’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귓가를 맴돌며 괴롭히는 모기와의 전투가 달라질 수는 없다. 늘 치르던 전투는 맹렬히 치르되, 전투마다 인간과 모기가 속한 지구 전체가 때론 문득 떠오르게 될 것이다. 있어도 문제이고 없애자니 더 문제인 모기, 이 생명체와 인간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에피 32호에 수록된 여러 징후들은 이 질문을 다시 되새긴다. 늘어가는 싱크홀은 무언가를 새로 개발하고 기존에 만든 것들을 유지보수하는 것 사이의 관계를, 변화하고 있는 장마의 양상은 우리가 ‘원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의 기준을, 원자력 발전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발전을 위한 불가피함을 해석하도 다루는 범위를 묻게 한다.
모기: 과학잡지 에피 Epi 32호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가 날씨의 언어로 문학과 삶을 읽어 준다. 문학에 등장하는 날씨를 통해 그 문학을 다시 읽으면 어떨까. 날씨는 삶을 닮았고 문학을 잉태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문학엔 삶이 담기기 마련이므로, 삶을 닮은 날씨에서 문학이 싹틀 수 있다는 것이다. 날씨와 문학은 삶이라는 고리로 연결된다. 저자의 삶이 살며시 포개지는 것은 그래서 당연하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도. 우리는 날씨와 문학을 듣고, 삶을 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날씨의 문장들

우리의 DNA에는 무엇까지 담겨 있을까? 우리의 입술, 발가락, 혹은 급한 성격까지 담겨 있을까? 심지어 우리의 운명과도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런 관심은 DNA가 발견되기 전부터 있었고 인류를 개조하거나, 나쁜 인종을 거르는 논리에 이용된 우생학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유전상담의 초기는 이런 역사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제, 생명윤리에 입각에서 환자중심주의, 공감적 소통에 중점을 둔 현대 유전상담이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유전상담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생소한 유전상담(genetic counseling) 분야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이다. 이 분야가 발달한 미국의 사례를 최초의 개척자들과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하고 아카이브 연구를 병행해서 연구한 결과를 담았다. 우리나라에는 손으로 꼽을 만한 숫자의 전문과정이 최근에야 대학에 설립되었고 유전상담사가 100명이 안될 정도이지만 미국에는 28개 대학에 과정이 설치되었고 7000 명의 유전상담사가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북미 지역 대학 과정을 이끈 다채로운 인물들의 개인적, 정치적 동기를 탐색했다. 그 결과 유전상담이 20세기 초반의 우생학 운동에 강하게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고 오늘날의 유전상담사들도 그 영향을 받은 조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책은 이런 경향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담고 있다.
미국에서는 유전상담사가 연구 중심 의료 기관, 유전자 검사 회사, 보건부, 소규모의 전문 클리닉등 광범위한 일자리에서 일을 하고 있고, 분야도 소아과, 산부인과, 종양학 등에서 심장학, 약물유전학, 희귀 질환 클리닉, 헬스케어 컨설팅 및 마케팅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대치동의 학습 상담에까지 동원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분야의 성장과 확장이 우생학의 어두운 혐의에서 벗어나 생명윤리와 환자 중심주의, 공감적 소통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한 사례를 따라 좋은 방향을 잡기를 바라며 이 책이 출간되었다. 미국의 경우 뿐 아니라, 책임 역자의 보론으로 한국의 유전상담의 역사도 일별해 볼 수 있도록 준비했다. DNA에 어떤 운명이 새겨져 있지만 운명을 실현하는 것은 인간이다.
유전상담의 역사

‘빵학년 수학’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 막대벌레 엄마와 여섯 마리 꼬마 막대벌레들이 펼치는 숨은그림찾기 이야기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찾기 놀이 안에 수 세기를 자연스럽게 녹여내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효과적인 수학 학습이 가능하디. 페이지마다 사라지는 꼬마 막대벌레들을 하나씩 세다 보면 어느새 수와 친해지고, 뺄셈 개념까지 익히게 된다.
여섯 마리, 꼬마 막대

0학년 과학 시리즈의 열한 번째 책. 어린이를 위한 과학 그림책 시리즈, ‘0학년 과학’이 바다 이야기와 함께 돌아왔다. 이 책에서는 파도가 넘실대는 파란 바다를 재 볼 것이다. 바다를 어떻게 하면 잴 수 있을까? 저울에 올려서 얼마나 무거운지, 끈으로 둘러서 얼마나 넓은지 알아볼까? 아니면 한 컵씩 바닷물을 퍼내 볼까?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하는 동안 바다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 책은 끝없이 펼쳐진 바다에서 우리가 정말로 재고싶은 건 무엇이었을지 생각하게 만든다.
바다를 재는 방법

과학잡지 에피 31호 ‘대통령과 과학’은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대통령이 과학에 대해 갖는 관점과 그에 따른 영향을 다룬다. 오동훈은 현대 한국 과학기술 시스템의 청사진을 만든 설계자로 꼽히며 ‘과학기술 대통령’으로 불리는 박정희 대통령의 과학관이 한국 과학기술에 미친 영향을 짚었으며, 이종식은 바람직한 과학이란 무엇인지 재정의하고 과학을 둘러싼 사회적 규범과 제도를 일신했던 혁명가 마오쩌둥의 ‘군중과학’을 살폈다.
이은경은 경제, 사회 정책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영국 대처 정부의 과학 정책을 연구 민영화와 과학 연구 상업화를 중심으로 설명했다. 강호제는 모든 생산공정을 기계화하고 이를 컴퓨터로 자동 조종하는 CNC 기술 관련 정책을 사례로, 국방력이자 생산력의 근원으로서 과학을 생존의 도구이자 번영의 수단으로 보았던 김정일의 과학관을 살폈다. 이관수는 소련과의 경쟁 속에서 ‘전략방위구상’ 정책을 통해 국방 R&D 예산을 높게 책정하고 비국방 R&D 예산은 삭감했던 레이건 정부의 사례를 다양한 갈래를 통해 예각적으로 짚어냈다.
송성수는 소련이 세계 최초 인공위성을 발사하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이 받은 ‘스푸트니크 충격’을 균형을 테마로 침착하게 과학기술을 활발히 지원해 미국 사회에 드리운 불안을 잠재웠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과학기술정책 정비 과정을 소개했다. 박진희는 독일 최초 여성 총리이자 과학자 출신인 메르켈 총리를 사례로 사실과 증거에 기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태도를 지닌, 과학자로서 훈련받은 정치가가 수립한 과학기술 정책의 빛과 그늘을 제시했다. “대통령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해 에피 31호가 살펴본 국내외 여러 대통령의 사례는 대통령이 과학의 모든 것을 좌우하지는 못하지만, 과학도 사회의 일부인 만큼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대통령과 과학이 서로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대통령과 과학: 과학잡지 에피 Epi 31호

자신의 이익을 늘리는 데 급급한 금융자본과 기업, 심화하는 빈부격차, 기후 변화를 비롯한 새로운 위기 등, 도저히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사회와 경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책은 ‘미션’ 중심 접근법을 제시한다. 정부가 기업, 시민사회와 함께 지속 가능하고 건강한 사회 구조를 만들겠다는 ‘미션’을 중심으로 담대한 목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추진할 때,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잡하고 난해한 문제를 해결하고 지금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하며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미션 이코노미

작품과 작가의 도덕성을 둘러싼 문제는 이 시점 가장 격렬한 논쟁거리다. 사건이 생길 때면 논쟁은 뜨겁게 타올라, 때로는 건강한 토론이 아닌 근거 없는 비난과 논리 없는 말싸움으로 번지곤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이를 다루는 이론적, 분석적 틀이 부재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작품의 도덕성을 둘러싼 여러 종류의 논의를 아우르고, 활용할 만한 기초적인 이론과 분석 방법을 소개하는 책이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다. 혼란스러운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책이다.
작가와 작품을 분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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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에피 30호는 과학이 이루어지고 발휘되는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작용하는 여러 맥락을 살핀다. 과학을 실행하는 주체가 인간인 만큼 과학은 이해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그런데 이해관계는 특정한 의도를 두고 기술을 개발하거나, 연구결과를 왜곡하도록 만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 속에 담긴 꿍꿍이셈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이 질문으로 기후 위기, 비타민, 제로칼로리 음료, 가습기살균제 등 우리 사회에서 현재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을 살폈다.
과학 속의 꿍꿍이셈: 과학잡지 에피 Epi 30호

한국사회의 집합 심리를 예각적으로 탐구해 온 사회학자 김홍중이 지난 20세기 한국사회를 이끌었던 근본이념이 ‘생존주의(survivalism)’임을 밝힌다.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관이자, 윤리이자, 미학인 생존주의는 전쟁, 독재와 민주화 그리고 급격한 경제성장을 겪는 동안 한국사회가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생존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 책이 제기하는 심층적인 성찰과 분석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낸 시간을 이해하는 동시에, 지금 현재 한국사회가 좇고 있는 가치와 욕망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톺아보도록 안내할 것이다.
서바이벌리스트 모더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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